All
Gincon Logo
[인터뷰] 가출 소년에서 K팝 800곡 안무가로…최영준 “내 안무에 내 이름을”19살 광주에서 무작정 상경…나이트클럽 DJ로 10년 버텨 신화 ‘This Love’ 계기로 세븐틴·트와이스까지…800여곡 안무 제작 “K팝 40년간 살아남은 안무팀 없어…안무가도 자신의 IP 가져야”
도형래 기자
2026.09.10 22:20

19살, 춤을 추겠다는 생각 하나로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는 집도 없었고 차비와 밥값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작한 청년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K팝을 대표하는 안무가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안무가 최영준이다. 신화의 ‘This Love’를 시작으로 세븐틴과 트와이스 등 K팝 대표 아티스트들과 작업했고, ‘프로듀스’ 시리즈의 안무 선생님으로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그가 이끄는 ‘팀 세임(TEAM SAME)’ 멤버들과 지난 10년 동안 만든 안무는 약 800곡에 달한다.

화려한 이력과 달리 출발은 막막했다. 최영준이 춤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무대를 보고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장기자랑에 나가고 비보잉을 하면서 춤에 빠졌다. 결국 19살, 광주를 떠나 서울의 프로 안무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춤만으로 생활하기는 어려웠다. 최영준은 당시를 회상하며 “안무팀에 왔다 갔다 하려면 차비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차비도 없고 밥값도 없었다”며 “사실 가출을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막내 댄서가 무대 한 번에 받는 돈은 5000원 정도였다고 했다. 그마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머물 곳까지 마련해야 했던 그에게 춤만 추면서 버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안무팀을 나왔다. 대신 나이트클럽 DJ로 일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갔다. 그렇게 거의 10년을 보냈다.

그렇다고 춤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밤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시간이 나면 혼자 춤을 연습했다.

최영준은 “보통 안무가가 되는 루트는 아니었다”며 “나이트클럽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다가 이쪽 업계에서 대타를 많이 구하니까 대타로 들어가게 됐고, 그러다가 눈에 띄어서 작품에 들어간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굴러온 돌 같은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안무가 최영준
안무가 최영준

신화 ‘This Love’가 만든 전환점

전환점은 신화의 ‘This Love’였다. 처음부터 안무 전체를 맡았던 것은 아니다. 기존 안무가와 함께 작품에 참여했다. 당시 신화 멤버들에게 최영준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최영준은 “신화 형들이 ‘얘는 한 번도 못 봤는데?’ 하면서 저를 궁금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신화 멤버들은 그에게 다른 춤도 보여달라고 했다. 오랫동안 혼자 연습하면서 준비했던 춤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최영준은 “제가 그때 준비된 게 좀 있었던 것 같다”며 “혼자 연습을 오래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기회가 연이어 찾아왔다. 최영준은 “신화가 잘되니까 세븐틴이 들어왔고, 세븐틴이 잘되니까 트와이스가 들어왔다”며 “제가 참여한 작품들이 계속 잘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K팝 안무가로 자리 잡았다. 현재 최영준이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곳은 팀 세임이다. 약 20명의 안무가가 함께 K팝 퍼포먼스를 만들고 있다. 한 곡의 안무를 제작하는 데는 평균 2주가량이 걸린다. 완성된 안무를 기획사에 넘긴 뒤에는 아티스트를 트레이닝하고 실제 무대에 올리는 과정까지 담당한다.

안무가의 역할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넓다. 최영준은 “그냥 ‘눈에 보이는 움직임은 모두 안무가가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시선 처리 하나하나도 안무가가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서는 3번 카메라를 봐라, 너는 이쪽 얼굴이 예쁘니까 이쪽 얼굴로 봐라, 여기에서 두 발 움직여서 1번에서 3번까지 가라는 것까지 안무가들이 해주는 것”이라며 “보통 우리가 퍼포먼스라고 하는 것들은 모든 것이 하나하나 계산돼 있다. 각도 하나하나,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다 계산돼 있다”고 말했다.

800여곡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세븐틴의 ‘손오공’을 꼽았다.

최영준은 “241명이 퍼포먼스에 들어갔다”며 “안무가들도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댄서들도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무가 최영준
안무가 최영준

800곡 안무가의 고민 “내 안무에 내 이름을”

K팝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자리 잡은 최영준이 최근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이름’이다.

최영준은 “쉽게 말해서 ‘제가 만든 안무에 제 이름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아주 단순하게는 성명표시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에는 작곡가와 작사가의 이름이 남는다. 그러나 안무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임을 밝히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영준은 “지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계약서에는 법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저작인격권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조항들이 있다”며 “그런 관행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안무가들이 안무를 만들어도 ‘이게 내 안무다’라고 말을 못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안무를 SNS에 공개하면서 창작 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제지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영준은 “만약 제가 SNS에 ‘이거 제가 만들었습니다’라고 영상을 올리면 바로 회사에서 제지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며 “안무가가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었으니 안무가에게도 그 정도의 성명표시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배경으로 업계의 매절계약 관행과 안무가의 열악한 협상력을 꼽았다.

최영준은 “엔터테인먼트 계약은 매절 계약 형태가 많고 그런 관행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며 “안무가들은 절대적으로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안무가 최영준
안무가 최영준

“K팝 40년 동안 살아남은 안무팀 없어”

최영준은 안무가의 성명표시권 문제를 넘어 안무 IP가 산업적으로 축적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무가들은 그런 이름조차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며 “산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안무가들에게 이름도 주어져야 하고 일정 비율에서는 RS(Revenue Share·수익배분)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이들이 규모가 커지고 산업도 계속 발전할 수 있는데 계속 멈춘다”며 “K팝 역사 40년 동안 살아남은 안무팀이 단 한 팀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무가가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산업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로 꼽았다.

최영준은 “예를 들어 제가 만든 안무가 어떤 게임이나 CF에 사용됐다고 해도 원작자인 저는 그 안무가 다른 곳에 사용됐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며 “안무의 모든 재산권이 회사 소유가 돼버리기 때문에 원작자인 안무가는 아무것도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구조를 두고 “한 번 짜고 내보내면 끝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최영준이 안무저작권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무븐트에서 안무 AI 개발에 참여하는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최영준은 “무븐트에서 안무 AI를 개발하고 안무저작권협회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우리도 IP를 가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댄서계에서 수면 위에 드러난 5%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95%는 제가 어렸을 때 궁핍하게 살았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게 산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안무 IP가 있어야 안무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팀 세임 20명, 각자의 안무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

그가 팀 세임을 운영하는 방식에도 이런 생각이 담겨 있다. 두 명으로 시작한 팀 세임은 8년 동안 후배 안무가들을 교육하면서 현재 20명이 활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최영준은 후배 안무가를 키우는 과정을 미용실에 비유했다. 그는 “미용실에 신입이 들어오면 오랫동안 가르치고 수련을 쌓게 한 다음 디자이너로 만들지 않느냐”며 “저희도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명으로 시작해 그 친구들이 성장하고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면 또 교육하고, 그 친구들이 다시 성장하면서 지금 20명이 됐다”며 “8년 동안 20명의 안무가를 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는 최영준이라는 한 명의 유명 안무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최영준은 “팀 세임의 20명 안무가들이 각자의 안무 브랜드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큰 꿈”이라며 “팀 세임이라는 회사도 단순한 안무가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안무 브랜드이자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안무가를 전문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는 ‘안무가 엔터테인먼트’도 구상하고 있다.

최영준은 “사실 안무가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거의 없다”며 “안무가들을 전문적으로 키우고 양성하고 케어하는 ‘안무가 엔터테인먼트’ 쪽도 방향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19살에 춤 하나만 보고 서울로 올라왔던 가출 소년은 차비와 밥값이 없어 나이트클럽 DJ로 일하면서도 춤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버텼고 신화의 ‘This Love’를 계기로 세븐틴과 트와이스 등 K팝 대표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를 만드는 안무가가 됐다.

이제 그의 관심은 자신의 성공을 넘어 다음 세대의 안무가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로 향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그 작품이 수익을 만들면 창작자에게도 돌아가며, 개인 안무가와 안무팀이 하나의 브랜드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면서도 최영준은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이 먼저라고 말했다.

최영준은 “제가 최영준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제가 만든 작품들이 세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양질의 안무를 만들어서 K팝 문화를 더 잘 퍼뜨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익 침해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