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BBC와 ITV, Channel 4 등 공영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ing, PSB) 콘텐츠를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쉽게 노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현지 유명 유튜버와 크리에이터들이 반발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Auntie v influencers: why YouTubers are ready for battle with the BBC’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요 영국 크리에이터들이 정부의 공영방송 콘텐츠 노출 확대 방안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 정부 “젊은층 떠난 TV…온라인에서도 공익 콘텐츠 보여야”
논란의 발단은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미디어 정책 녹서Green Paper) ‘Watch This Space’다.
영국 정부는 젊은 층의 영상 소비가 기존 방송에서 유튜브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공공서비스방송 콘텐츠가 이용자에게 노출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녹서(Green Paper)는 영국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대중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발행하는 자문용 문서를 말한다.
영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4~2025년 16~24세의 전체 영상 시청시간 가운데 동영상 공유 플랫폼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74%에 달했다. 4~15세 어린이에게는 유튜브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영상 서비스로 전체 시청시간의 28%를 차지했다.
영 정부는 이에 따라 BBC·ITV·Channel 4 등 공공서비스방송의 콘텐츠가 유튜브 같은 제3자 플랫폼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적절한 수준으로 노출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특정 방송사의 영상을 강제로 추천 알고리즘 상단에 배치하기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우선 플랫폼과 방송사 사이의 자율적 협약을 선호하고 있으며, 충분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입법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유튜버들 “방송사 위해 경쟁 규칙 바꾸는 것”
크리에이터들은 이를 사실상 기존 방송사를 위한 ‘알고리즘 우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크리에이터 사이먼 스큅(Simon Squibb)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팔로워들에게 정부 정책에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
스큅은 “신뢰는 얻어야 하는 것”이라며 “BBC가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 인지는 대중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간 시청자가 약 1500만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Sorted Food’ 공동창업자 벤 에브렐(Ben Ebbrell)도 반발했다. 그는 "그동안 전통 미디어가 온라인 크리에이터를 낮게 평가해 놓고 이제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자 기존 경쟁 방식에 적응하기보다 골대를 옮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구독자 약 31만명을 보유한 크리에이터 제이드 비슨(Jade Beason)은 정부 정책이 방송사에 필요한 해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비슨은 “사람들이 TV 뉴스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몰라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며 “어디 있는지 알지만 시청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전통 방송사가 온라인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Diary of a CEO’ 팟캐스트 제작에 참여했던 크리에이터 그레이스 앤드루스(Grace Andrews)도 크리에이터들의 반대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는 방송사들이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법을 통해 다시 그 영역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SNS의 핵심은 이용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선택하는 데 있는데 정부가 특정 콘텐츠 노출에 영향을 주면 플랫폼에 대한 이용자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 정부 “방송사와 크리에이터 제로섬 아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정책을 전통 방송사와 독립 크리에이터 사이의 경쟁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대변인은 가디언에 “BBC, ITV, Channel 4 등 공공서비스 미디어 콘텐츠가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전통 방송사와 콘텐츠 크리에이터, 기타 동영상 플랫폼 사이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며 각 주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리사 낸디 영국 문화부 장관은 지난 6월에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한 뉴스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허위정보와 조작정보에 맞서는 치열한 싸움 속에서 규제 대상인 공공서비스 미디어가 제대로 보이고 들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를 이용자 SNS 피드에 자주 노출시켜 허위정보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얘기다.
영국 정부의 녹서와 관련 의견수렴은 이달 말까지다.
